근대 인물(近代 人物)

이성열(李聖烈): 1865~1913 자(字) 우명(友明) 호(號) 퇴암(退庵)이다. 고종25년(1887) 문과(文科) 급제(及第)하여 대사성(大司成) 의주 부윤(義州府尹) 전라, 경상감사(全羅,慶尙監事)를 역임하고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체결(締結)되자 벼슬을 버리고 안성, 여주등지에서 500여의 의병(義兵)을 모아 왜군과 대적하다가 동지들이 체포되자 음독 순절(飮毒殉節)하였다.

 

이정열(李貞烈): 1868~1950 자(字) 군서(君瑞) 호(號) 퇴호거사(退湖居士)는 고종으로부터 사호(賜號)를 받은  것이다. 고종28년(1890)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이조참판(吏曹參判), 역한원 시강원부 첨사(歷翰院侍講院副僉事)와 규장각직학사(奎章閣直學士)를 지냈다. 그가 고종에게 올린 연엽주(蓮葉酒)는 지금도 대를 이어 전승(傳承)되고 있다.

 

이국선(李國善): 1886~1910 일명(一名) 일선(逸善)이며,광무 11년(1907) 7월 고종이 일제강압으로 양위하자 속리산에 입산하여 의병활동을 하던 중 순종4년(1910) 7월  노고성(老姑城)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이준영(李準永): 1889~1939 자(字) 문일(文逸) 호(號) 송은(松隱)이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3.1 만세사건으로 복역하였다. 3.1의사(義士)로 추서(追敍)되었다.

 

이회식(李會植): 1892~1988 자(字) 경무(景武) 호(號)  취산(翠山)이다. 계성의숙(啓聖義塾)을 창립하여 풍산 학술강습회로 개명하고 민족애국교육활동과 항일농민운동을 주도 하다가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2000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 되었다.

 

이창선(李昌善): 1895~1961 자(字) 문약(文若)이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3.1만세사건으로 복역(服役)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