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黃閣錄(相臣錄)에 오른 4人>

이 탁(李 鐸) 宣祖4年(1571)에 領議政이 되었다. 諡號는 貞肅公이다. 名臣條 參照

 

이행원(李行遠) 字는 士致이며 號는 西華이며 新溪縣令 重基의 아들이며 淸江公 濟臣의 曾孫이다. 光海君9年  (1617) 文料에 及第하여 承旨 大司諫 大司成 大司憲  吏曹參判 吏曹判書 兵曹判書를 거처 仁祖25年(1647)에 右議政이 되었다. 諡號는 孝貞이다.

 

이상진(李尙眞) 字는 天得 號는 晩菴이며 榮先의 아들이다. 仁祖23年(1645)文科에 及第하여 內外官職을 지내 고 肅宗6年庚申(1680)에 右議政이 되었다. 剛直하고  忠誠스러웠으며 京外에 한떼기의 밭도 없었고 언제나  남의 집에 寄寓하여 淸白하기가 한결 같아 世上에서  稱頌하였으며 王妃廢黜을 諫疏하여 大節이 더욱 뛰어 났다. 諡號는 忠貞公이다. 耆社에 들어가고 淸白吏로  選定되었다.

 

이근명(李根命) 字는 舜九 號는 東眉이며 生父는 工曹判書 興敏이고 吏曹判書 時敏의 系子이며 淸江公 濟臣  의 15代孫이다. 高宗8年(1872)문과에 급제하여 江原 平南 京畿觀察使를 지내고 高宗壬寅年(1902)에 議政이 되었으며 耆社에 入社하고 壽는 77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