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節 義 12人 >

이호석(李孝碩) 定平府使로 在任中에 北쪽 오랑캐의 侵寇가 있어 抗戰하다가 戰死하였는데 故鄕의 血雨가     내린 異蹟이 있었다. 孝靖公 貞幹의 孫이며 靈岩郡事 士惠의 長子이다. 松泉書院에 配享되었다.

 

이덕숭(李德崇) 號는 丹江이며 文科에 及第하여 忠淸監司를 지냈고 領議政에 贈職이 있었으며 諡號는 文貞    이다. 燕山朝 때에 大司諫으로서 直言으로 諫하다가 誅害되었다.

 

이순인(李純仁) 字는 伯生 號는 孤澤이며 文科에 及第하여 直提學 司諫 都承旨를 지냈으며 壬辰倭亂에 宣祖   大王을 扈從하다가 成川에서 殉節하였다. 扈聖原從功臣으로 錄勳되고 全陵君으로 封爵되였으며 吏曹判書     로 贈職되고 諡號는 文貞公이며 文義公 彦冲의 8代孫이다.

 

이용제(李容濟) 字는 汝優 號는 後凋堂이며 贍戶曹參議 曇의 아들이다. 文科에 及第하여 興德縣監으로 있을  때에 宣祖丁酉(1597)年에 倭敵再侵을 맞아 南原에서  抗戰하다가 殉節하였다.

 

이인민(李仁民) 字는 士元 宣祖癸巳(1593)年에 義兵을 일으켜 晋州城 守城戰鬪에서 倭敵과 싸우다가 壯烈하   계 殉節하였다. 晋州 彰烈祠에 享祠되었다. 文義公 彦冲의 9代孫이다.

 

이 려(李 勵) 字는 得元 忠淸水使 淮壽의 아들이며 貞肅公 鐸의 孫이다. 宣祖 壬辰倭亂(1592) 때에 重峯 趙   憲과 더불어 義兵을 일으켜 抗戰하다가 錦山戰鬪에서 戰死하였다. 持平으로 贈職되고 旌閭되었다.

 

이영남(李英男) 字는 子豪 號는 效岳 正郎公 直幹의 玄孫이다. 宣祖 壬辰倭亂때에 加德僉使로서 忠武公 李    舜臣과 露梁海戰에서 같이 戰死하였다. 兵曹判書의 贈職이 있었으며 宣武原從 1等에 錄勳되였다.

 

이신충(李愼忠) 武科에 及第하여 古州牧使로 在任할 때에 北쪽 오랑캐의 侵寇를 맞아 督戰하다가 屈하지 아니하고 戰死하였다. 石灘 愼儀의 아우이며 正郎公 直幹의 5代孫이다.

 

이현문(李顯門) 光海朝 때 廢母에 臨하여 生員들과 收議하여 上疏 抗爭하다가 杖死 당하였다. 뒤에 持平이 贈   職이 있었으며 旌閭되었다. 繕工監假監役 璨의 아들이며 署令公 珍幹의 8代孫이다.

 

이경림(李慶林) 字는 善卿 號는 齊谷 光海朝 때 太學掌議로서 廢母에 對하여 抗訴하다가 귀향갔다. 贍 兵曹  參判 寶命의 아들이며 文義公 彦冲의 10代孫이다.

 

이홍제(李弘濟) 字는 元輔 號는 柏峯 僉知中樞 宇鼎의 아들이다. 英祖甲戌(1754) 文科에 及第하였으며 掌令  으로 在任할 때에 洪鳳漢의 無道함을 上疏 排斥하다가 海南으로 流配되어 十年風霜을 겪었지만 忠義를  崇尙하는 뜻은 더욱 굳어졌었다.

 

이한응(李漢應) 字는 敬夫 號는 鞠陰 贈 禮曹叅判 璟鎬의 아들이다. 高宗朝 때에 英國 駐箚公使館 參事官으  로 赴任하여 公使署理로 視務하면 중 乙巳條約(1905)으로 國勢가 救할수 없음을 恨歎하면서 藥을 마시고    殉職하였다. 서울 獎忠壇에 配享되었다.